10년이 걸리는 어려운 소송이 있다?[김변의 가사소송 백전백승]

입력 2022-07-20 17:16   수정 2022-07-22 15:56

이 기사는 07월 20일 17: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혼소송 사건의 의뢰인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이 사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 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부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 머리 속에는 짧게 마무리된 사건부터 완전히 결론이 나는 데까지 장장 10년 정도 걸렸던 사건들이 스쳐간다.

재미있는 점은 대체 재판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법원에서는 사건과 당사자의 특성, 난이도, 관련 사건의 결과 대기, 대리인의 변론 방식 등 종합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그렇다고 할 것 같고, 대리인들은 법원이 문제라고 할 것 같고, 당사자들은 뭐가 됐든 그저 화만 날 것 같다. 참고로 법원은 "… 등", "종합"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이런 경우가 있다.
A는 배우자 B와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 대화는 없고, 말다툼은 자주 한다. B는 항상 귀가가 늦고 전화가 오면 다른 방으로 가거나 밖으로 나가서 받는다. A는 B의 불륜 정황을 발견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A는 B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현장 사진을 찍었다. 그 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각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각각 발급받았다. 화가 난 A는 현장사진을 가족, 지인들에게 보냈다. B는 집을 나가 버렸고 A에게 생활비와 양육비도 보내지 않는다.

B는 상해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A를 고소했고, A도 상해죄로 B와 불륜 상대를 고소한다. 여기에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B는 A를 상대로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자녀와의 면접교섭도 요구한다.

이혼소송에서 A는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답변하고, 이와 별도 사건으로 가정법원에 B를 상대로 부양료와 양육비를 구하는 비송사건을 제기한다. 추가로 A는 불륜 상대에게 위자료를 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한다. 이혼소송에서 B는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예전에 이미 파탄됐다고 답변하고, 부양료와 양육비 사건에서는 집의 대출이자와 관리비, 세금, 자녀 학원비 등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므로 양육비와 부양료를 더 이상 지급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법원은 이혼사건을 일단 조정에 회부한다. 부양료와 양육비 사건을 다루는 다른 재판부에서는 사전처분으로 B에게 임시로 양육비와 부양료를 지급할 것을 명했지만 B는 이에 즉시항고하여 효력이 없고 이에 관해 별도로 2심 재판이 진행된다. 조정사건을 담당하는 조정재판부에서는 이혼, 형사, 위자료, 부양료와 양육비 사건 등을 일괄 타결할 것을 권고했지만 A와 B의 이혼 의사가 크게 대립하면서 조정은 불성립됐다.

여기까지 오면 이혼소송의 담당 재판부는 A와 B에게 가사조사를 받도록 명한다. 어쩌면 A와 B에게 부부상담, 자녀와의 시범 면접교섭 등의 절차를 밟도록 명할 수도 있다. 그동안 형사절차는 지리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각각 고소한 내용에 대해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에서는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약식 기소를 했고, 법원에서는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을 선고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정식 형사재판이 진행된다. 형사재판에서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여기에 가정을 조금 더 보태면, 집에서 부부싸움이 나거나 자녀와 갈등하다 가정폭력 또는 아동폭력 사건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또는 자녀가 부모의 불화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비행을 저질러 소년사건으로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 사례라면 이혼, 형사, 위자료, 부양료와 양육비 등 각 사건에 대한 1심 판결과 기타 관련 사건에 대한 결정이 나는데 2~3년 정도는 족히 걸릴 수가 있다. 서로 쟁점이 물려있는 경우도 많다. 만일 이혼소송의 1심에서 B의 이혼 청구를 기각하고, B에게 부양료와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을 경우에는 100% '항소각'이다.

2심에서는 일단 이제까지 있었던 관련 사건들을 정리하기 바쁘다. 우선 관련 형사사건, 민사소송, 가사비송사건 등의 결과를 하나하나 정리해야 하는데 심지어 항소나 이의 제기 등으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관련 사건도 있을 수 있다. 2심에서 A와 B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이혼 의사가 대립할 수도 있고, 혹은 A가 그간의 시간과 갈등 상황에서 마음을 바꿔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게 되면 A는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게 되고 사건은 이제 재산분할 청구에 관해 판단하기 위한 심리로 본격화된다. 여기서는 A와 B의 재산을 찾고 정리하고 또 누가 얼마나 재산 형성이나 유지에 기여했는지에 관해 심리하게 된다. A와 B의 재산과 관련해 다른 관련 소송은 없어야 시간이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린다.

가까스로 2심이 끝나더라도 이혼이 되지 않았거나 또는 결론이 당사자들의 생각과 크게 달라 상고를 하면서 3심이 진행될 경우 시간은 또 흘러간다. 만일 3심까지 거쳤는데도 A는 여전히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B의 이혼 청구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라는 이유로 기각되어 확정된 경우에는 일단 B는 일보 후퇴하기 마련이다. 이제 B는 유책배우자이더라도 이혼이 가능한 요건을 고려해 새로운 소송을 기약한다.

대단히 전형적인 사례인데, 이를 변주할 만한 요소는 많다. 그리고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사건 외에도 자녀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자의 지정이나 변경 문제나 면접교섭, 부양료와 양육비 등은 수시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3심까지 진행되었지만 B가 향후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이를 심리하다 보면 10년 정도는 훌쩍 흘러간다.

너무 막장인가? 사실 가사사건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욱 잔인한 편이다. 마치 뭉친 실타래와 같고 이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지혜와 인내가 꼭 필요하다. 장기간의 소송에서 당사자들의 속은 이미 속이 아니다. 건강을 잃는 경우도 있다. 분쟁 과정에서 직장생활이나 생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많다. 미성년자였던 자녀는 마음의 상처를 품은 채 성인이 된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대리인들은 크게 두 부류인데, 하나는 가능한한 모든 분쟁을 최대한 수면 위로 일으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형이고, 반대는 가능한 한 분쟁을 최소화하고 중요한 사건에서 일괄 타결을 구하는 유형이다.

물론 모든 사건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혼소송을 비롯한 가사사건은 다른 관련 사건이 얽혀있어 그 결과를 반영하다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20년~30년 전 일을 가지고도 서로 다투기 일쑤다. 그때 그때 당사자의 생각이 변하는 데다 또 달라진 생각과 상황이 새롭게 쟁점이 된다. 가사사건은 이미 끝난 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아직 계속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살아있는' 사건이다. 게다가 그 안에는 사람과 가족,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경우, 흘러간 시간은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필자의 개인 견해일뿐 법무법인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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